어느 따스한 봄날. 오래되어 녹쓴 철조망위에 가시를 피해 겨우 기어오른 호박줄기에 호박꽃 한송이 가냘프게 피어 있었습니다. 꽃속으로 엉덩이 곤두세우고 앵앵거리며 놀던 벌 한마리도 보았습니다.
며칠후 .... 손끝 한마디 만한 호박이 달려 있었습니다. 수정된 암술이 더디어 열매가 되어 맺혀 있었지요. 아하......사랑의 씨앗.....
또 다시 시간이 많이 흘러 가보니.....
제가 모르는 시간과 시간사이에서 강열한 햇살과 모진 비와 바람에도 끊어지지 않고 질긴 그 내면에 얽힌 혈관들의 맥박이 들리는듯 하였습니다. 머리카락 같은 질긴 생명줄로 이어져 마치 질긴 고래심줄 같이 줄 하나 달고서....무겁게 끝까지 버티고 이겨낸 완성된 삶이 어찌나 위대하였는지 그날 저는 그 노을섬 같은 누런 호박 한덩이 앞에서 무릎을 꿇을 뻔 했습니다. 호박의 꼭지는 돌덩이 같이 단단하고 탯줄같은 한 줄은 얼마나 ...견고한 밧줄 같았는지....
참으로 식물이나 동물이나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으로 깨달아야 하는지.....
누런 호박을 바라보면 서정주님의 '국화꽃 곁에서'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고 노래 하였듯이.
그래서 이 순간을 진실로 더욱더 사랑하며 살고자 합니다. 입가에 미소를 띄며....매사 만족한 마음으로.
